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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청정국토와 환경보살을 향한 힘찬 발걸음

4회 지속가능발전에 대한 불교의 지혜와 대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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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관리자 작성일17-01-03 17:34 조회371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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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연합개발계획(United Nations Development Programme)의 연례보고서는 현재 지구 대기 중 이산화탄소의 농도는 65만 년 동안 지구 역사상 최고인 380ppm에 이르며, 21세기 중에 지구의 평균 온도는 섭씨 5도 이상 오를 것이라고 지적한다. 지금 상태에서 획기적인 전환이 없을 경우 34만 기온이 상승해도 2080년까지 18억 명이 물 부족으로 고통을 당하고, 해수면 상승 등으로 33천만 명이 홍수를 피해 이주해야 하고, 22천만에서 4억에 이르는 이들이 말라리아에 걸릴 것이라고 추정한다. 기후변화의 영향으로 2000년 수준에서 밀 생산량은 50퍼센트, 쌀 생산량은 17퍼센트, 옥수수 생산량은 6퍼센트 줄어들 것으로 보인다. 지금 지구상에 존재하는 동물의 38%16,928종이 멸종 위기에 놓였다.

 

이에 2015927일 유엔총회는 지속가능발전목표(Sustainable Development Goals)를 합의하였고, 이의 일환으로 파리기후협약을 맺고 2016422일에는 196개국의 합의 국가 중 170개국의 고위관계자들이 서명하였다. 협정이 발효되는 대로 전세계 국가들은 산업화 이전 대비 지구 평균기온 상승을 2도보다 상당히 낮은 수준으로 유지하고 온도 상승을 1.5도 이하로 제한하는 노력을 한다는 장기목표 아래 각국은 기여 방안을 스스로 정하되 5년마다 상향 목표를 제출해야 한다. 

 

이번 여름에 태국 푸켓에서 지속가능발전에 관한 국제포럼(The 2016 Asia Theology Forum)이 열렸다. 미국, 프랑스, 영국을 비롯하여 동남아의 10여 개국에서 온 발표자 가운데 유일한 불자인 필자는 <지속가능 발전의 장애에 대한 불교적 대안>에 대하여 발표하였기에 이를 간략히 요약한다.

 

탄소를 배출하는 주범인 에너지 문제의 대안은 재생에너지 개발과 욕망의 무한한 충족에 바탕을 둔 삶의 변화다. 재생에너지의 개발과 에너지 대체에 대해 불교는 어떤 대안도 주지 못하지만, 후자의 대안에 대해서는 지혜를 준다. 불교는 욕망의 충족이 행복이 아니며 나와 연기 관계에 있는 타자를 위한 욕망의 자발적 절제에 이르러 마음의 평정상태에 이르는 것이 진정한 행복에 이르는 길이라 가르친다. 이런 삶으로 전환한다면, 우리는 에너지를 덜 사용하면서도 충족한 삶을 살 수 있다. 

 

환경파기를 야기한 기계론적 세계관과 이항대립의 사유체계에 대해 불교는 연기론을 바탕으로 생태론과 불살생의 생명관을 펼친다. 서양의 이항대립의 사상이 댐을 쌓아 물과 생명을 죽이는 원리를 이룬다면, 위천의 홍수를 막으면서도 물을 맑게 유지한 상림처럼, 화쟁의 불일불이(不一不二)는 그 댐을 부수고 숲을 조성하고 물길을 넓혀서 물이 흐르며 자연정화를 하면서 모든 생명을 품게 하는 원리이다. 

 

  그동안 지구촌을 지배하며 개발을 촉진한 것은 성장신화다. 이에 대해 불교는 공업(共業)에 바탕을 둔 소욕지족(少欲知足)의 삶을 제시한다. 나와 타인, 주변의 생명, 더 나아가 자연과 깊은 연관관계에 있다는 생각과 여기에 업의 원리가 작용하고 있음을 깨달으면, 공동의 악업을 짓지 않기 위하여 소욕지족(少欲知足)의 삶을 살게 된다. 많은 것을 소유한다는 것은 그만큼 업을 짓는 행위이며, 욕망은 신기루이기에 많은 것을 소유한다고 해서 행복하지 못하다. 하지만, 타인과 나누면, 뇌 속에서는 이를 보상하려는 화학물질이 분비되어 흡족한 마음의 상태에 이른다.

 

환경을 파기하고 무수한 생명을 죽인 국가와 자본주의에 대해 불교는 정의롭고 평화로운 생태복지국가로 전환하라고 한다. 무역량보다 이 땅의 강과 숲에 얼마나 다양한 생명들이 공존하고 있는지, GDP보다 국민들이 얼마나 행복한지에 초점을 맞추어 국가를 경영하고 정책을 구사하라고 한다.

 

이제 패러다임을 전환하고 정의롭고 평화로운 생태복지국가로 전환하고 지속가능한 발전을 도모하고 모두가 이에 따른 실천을 행하지 않으면 인류에게 22세기는 없을 수도 있다. 우리 모두 불성을 지니고 있다. 다만 잘못된 정치와 제도, 문화와 교육으로 인하여 서로 불성을 드러내기보다 악마성만 조장했다. 타락이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그들을 타락하게 하는 구조의 문제라면, 그 구조를 평화와 상생(相生)의 구조로 바꾸어야 한다. 세상을 탓하기보다 내가 먼저 부처가 되려 한다면, 시나브로 주변 사람들 또한 하나둘씩 자기 안의 부처를 드러내리라.

 

- 이도흠(한양대 국문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