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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청정국토와 환경보살을 향한 힘찬 발걸음

3회 내 몸이니 아끼고 사랑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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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관리자 작성일17-01-03 17:32 조회364회 댓글0건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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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붓다는 생, , , 사의 근본 고통을 가진 인생 안에서 누구나 겪을 수밖에 없는 네 가지 고통을 주목했다. 그것은 첫째, 사랑하는 이와의 헤어짐, 둘째, 미워하는 이와의 만남, 셋째, 원하는 것을 얻지 못함, 넷째 이 모든 것을 합해서 설명한다면 나의 구성원인 5(五蘊) 즉 물질(),감각(),연상(),의지(),인식()의 다섯 가지가 왕성해짐 때문이라고 했다. 나의 구성원인 5(五蘊)이 왕성해진다는 것은 무엇을 말하는 것이며 왜 괴로움이라고 하는가?

 

  이 지구상의 모든 존재와 존재를 구성하고 있는 물질은 지, , , 풍의 4대와 4대가 모여서 된 것들로 이루어진다. 모든 존재와 물질이라는 개념은 땅속을 포함하여 땅에 있는 모든 광물과 그 위에 살고 있는 모든 존재들 동물과 식물 그리고 곤충과 원생동물 등 모두를 포함한다. 또 물속에 포함된 모든 물질과 물속과 물 위에 살고 있는 모든 동식물 그리고 플랑크톤 등을 포함한다. 공중에 살고 있는 모든 존재들과 공중을 이루는 모든 물질, 공중을 통과하는 모든 것들을 포함한다. 이른바 생태의 물질적 구성요소이다. 4대는 그리스로마의 철학자들이나 인도의 사상가들이나 여러 곳의 종교, 사상가들이 존재의 구성요소라고 생각해 온 것들이다. 그런데 그들 또는 뒷사람들이 잘못 이해한 것이 있다. 그것은 바로 지대(地大)가 흙이요, 수대(水大)가 물이며, 화대(火大)가 불이고, 풍대(風大)가 바람 그 자체라고 이해하는 것이다. 흙은 흙 자체보다는 흙과 같은 성질, 물은 물과 같은 성질, 불은 불과 같은 성질, 바람은 바람과 같은 성질을 말하는 것이다. 지대는 흙처럼 만물 또는 존재를 유지하는 성질 또는 그 반대로 부수는 성질을 말하는 것이다. 그것은 흙이 지닌 성질과 비슷하거나 같다. 수대는 만물을 깨끗하게 하거나 더럽히는 성질을 말한다. 흐르게 하거나 멈추게 하는 성질도 수대이다. 깨끗하게 하는 정도 또는 흐르게 하는 정도를 나타내는 성질이 수대이다. 화대는 만물을 따뜻하게 또는 차갑게 하는 따뜻함의 정도를 나타내는 성질을 뜻한다. 풍대는 움직이는 성질과 멈추게 하는 성질 즉 밀어주는 성질과 붙잡는 성질을 말한다.

 

  우리들의 몸도 이것들과 이것들의 결합물질들이 결합하여 이루어진다. 결합하는 방법론은 어떤 힘들에 의지하게 되는데 그것이 결합력이다. 결합력은 두 가지로 나뉜다. 같은 물질이나 성질끼리 잡아당겨서 결합하게 하는 힘은 응집력(凝集力)이라고 부른다. 다른 물질이나 성질들이 서로 잡아당겨서 결합하게 하는 힘은 부착력(附着力)이라고 부른다. 이러한 힘들이 작용해서 결합하게 된다. 이것들이 응집력과 부착력을 매개방법으로 하여 유기적으로 결합한다. 그렇게 되어 나(우리)의 몸과 몸을 둘러싸고 있는 우주의 구성 물질들이 서로 매개가 되어 같은 물질을 주고받아서 연결되고 있다. 그렇게 된 물질들(rupa)에 비물질 즉 정신작용(arupa)이 결합하였을 때를 살았다고 하고, 분리되었을 때를 죽었다고 한다. 정신작용 가운데 뇌의 기능이 정지된 것을 뇌의 죽음(腦死)이라고 한다. 심장의 기능이 정지된 것을 심장의 죽음사(心臟死)라고 한다.

 

  그러면 정신작용은 무엇일까?

()과 색()을 인연하여 안식(眼識)이 생긴다. 이들 셋의 화합(和合)이 촉()이다. 촉에서 수(), (), ()가 함께 생긴다. 이들 네 가지가 비물질적인 온()이다. 안과 색과 이들 법을 사람이라 부르고, 이들 법에서 사람이라는 생각을 한다...... 그리고 이와 같이 이야기 한다. 내가 눈으로 색을 보고, 귀로 소리를 듣고......마음으로 사물을 인식한다고. ...또 이와 같이 이야기한다. 이 존자는 이름이 이러하고, 이렇게 태어났고.......이와 같이 오래 살다가 이렇게 목숨을 마쳤다고. 비구들이여, 이것은 관념이며, 기억이며, 언설이다.”

 

  정신적인 작용과 이름 즉 단어, 개념에 관한 설명이다. 꽃을 꺾기 전에 아름답다고 하는 느낌이 있었을 것이다. 아름답다고 하는 느낌 이전에 옛날에 저렇게 생긴 것은 아름답다고 표현한다는 것을 배웠을 것이다. 아름답다고 느끼기 전의 아! 이것! 하는 정신작용을 촉()이라고 한다. 감각기관인 눈()이 감각 대상인 색()을 만났을 때 눈으로 식별함(眼識)이 동시에 발생한다고 보고 말하는 표현이 바로 세 가지가 화합함이 촉()’이라고 하는 표현이다. 일반적으로 생각할 때 눈으로 물건이나 모양을 보면 OO로구나 하는 생각이 들 것이다. 이때의 정신과정을 설명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 셋이 먼저 있어야 할 것이다. 그런데 촉에서 좋다, 나쁘다, 좋지도 나쁘지도 않다는 감각적 느낌이 다가오는 것을 수()라고 한다. 그에 따르는 감각 내용과 느낌 그리고 개념 등의 연상작용(聯想作用)이 지각되는 것을 상()이라 한다. 이 상에 의해 형성된 감정이나 의식적 정보를 따라서 분별작용이 생기는 것을 사()라고 한다. 이런 작용에 의해서 어떤 물건이나 현상을 보았을 때, 소리를 들었을 때......정신적, 물리적, 화학적, 수리적, 논리적 현상을 대했을 때 우리는 그동안 가지고 있었던 경험적 정보에 의해 판단하게 된다. 그런데, 이렇게 과거의 경험적 정보에 의해 흔히 우리가 실재(實在)라고 알았던 것이 사실은 관념이며, 과거의 연상에 따른 기억이며 그것을 말이나 글로 나타낸 것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관념이며 기억이며 언설이라는 표현이 정확하다.

 

  우리의 몸과 마음을 이루고 있는 것들과 우리를 포함한 생태를 이루고 있는 것들 모두가 하나의 연결고리를 가지고 있다. 구조적으로, 도식적으로 이해되는 단선적인 연결구조가 아니라 아주 복잡한 관계를 가진 연결이다. 그것은 그물망, 인드라망, 섭리, 복잡계의 통섭(通攝) 등의 단어로 나타낼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을 불교 경전에서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이것이 있으면 저것이 있고, 이것이 생기면 저것이 생긴다. 이것이 없으면 저것이 없고 이것이 없어지면 저것이 없어진다.”

맛지마 니까야의 이 내용은 연기(緣起)에 관한 설명이다. 연기는 다른 경전에서도 무수히 나오는 말로써 서로 관계를 맺어 존재하고 발생하며 그 반대의 작용도 하고 있다는 것을 뜻한다. 이런 관계를 우리는 현대적 용어로 생태, 생태계, 생태계의 관계라고 하는 것이다. 생태계의 관계를 주위생태라고 표현하였는데 이 관계가 바로 생태를 연결망으로 살펴보는 고리가 된다. 그렇기 때문에 생태를 연구하는 것은 몸 생태와 정신생태 그리고 주위생태를 이해하고 그 관계를 파악하는 것이다. 그래야만 연결고리 속에서 빚어지는 생태의 위기를 제대로 파악할 수 있고 위기에서 벗어나는 대안도 마련할 수 있다. 

 

  나(우리)의 몸생태, 정신생태, 주위생태가 떨어진 별개의 낱생태가 아니라 그물망처럼 연결되어 있는 온생태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존재 하나하나의 몸생태가 바로 몸생태와 주위생태이며 거기에 깃든 마음(정신)이 정신생태이므로 모두가 연결되어 있는 것이다. 그런데 몸생태와 주위생태와 연결되어 있는데 거기에 정신생태가 연결되면서 바람직한 행(,sankara) 즉 하려고 하는 마음, 마음이 꾀하는바, 의도라고 번역되는 마음의 행동이 작용하게 된다. 하려고 하는 마음이 제대로 된 정보를 가지고 행동하면 바람직한 결과가 이끌어질 것이다. 즉 모든 생태가 공유하는 최대한의 행복(幸福, sukkha)을 얻게 될 것이다. 그러나 하려고 하는 마음이 제대로 되어있지 않은 잘못된 정보를 가지고 행동하면 그 반대의 결과가 얻어질 것이다. 그것은 모든 생태에 괴로움(, dukkha)를 가져다줄 것이다. 그 잘못된 정보 가운데 중요한 하나가 바로 나와 생태 그리고 정신 즉 몸생태와 정신생태 및 주위생태를 구분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몸생태를 행복하게 한다면서 주위생태를 불행하고 괴롭게 하여 결국은 몸생태와 정신생태도 괴롭게 만드는 결과가 된다.

 

  “새로써 새를 길러 숲속의 즐거움에 내맡겨두고, 물고기를 보고 물고기를 알아 강호의 즐거움을 제멋대로 하도록 놓아두어야 한다. 한 물건이라도 있어야 할 곳을 잃지 않게 하고, 이 모든 것이 제각기 마땅함을 얻도록 해야 한다.”는 고려 이 자현의 말은 참으로 오늘날 개발을 통해 얻는 경제 가치에만 정신이 팔린 지도자나 기업인들이 명심해야 할 덕목이라 할 있다. 생태보전을 위해 애쓰는 이들이 살펴야 할 것이 있다. 하나는 생태를 보전하는 경각심을 일깨우기 위해서 나 자신의 생태를 위협하는 방법론을 쓰는 것이 과연 생태적으로 옳은가를 반성해야 한다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생태보전의 중요성을 비경제적 가치로 표현하는 일이다. 현대는 자본주의 시대로서 경제적 가치를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으면 의식적으로 외면하게 되어 있다. 따라서 경제적 가치를 반드시 논의의 표면에 올려놓아야 한다. 그러면서도 하고 싶은 주장을 논리적으로 잘 전개해야 하는 것이다. 그것은 바로 동일가치로 다른 개념을 분석해서 그 값을 비교해야 바르게 판단할 수 있다는 것이다. 경제적 가치를 얻기 위해 자연을 파괴하고 개발하는 것과 경제적 가치를 얻기 위해 자연생태를 보전하는 것이 결과적으로 어떤 차이가 있는지를 총량으로 비교해서 생태를 보전하는 것이 부가가치가 크다는 것을 입증해야 한다. 그래야 자본주의 시대에서도 보다 나은 경제적 가치를 얻기 위해서는 생태를 보전해야만 된다는 결론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법현스님(불교환경연대 공동대표, 불교생명윤리협회 집행위원장)